Jinho

네모에 대한 명상

2015. 1. 16. 14:59

동글동글 하기보다는 네모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끌리는대로 움직이는 것이 원이다. 차 바퀴는 오르막길에서 받침목을 대야하고 굴러가는 펜은 무언가로 고정해야만하듯 원은 참으로 줏대가 없다. 그러면서도 오만하다. 어떤 각과도 공존하지 않은채 하나의 변으로만 이루어진 유일무이한 존재. 그렇기에 원은 다른 어떤 변형된 모습도 허용하지 않는다. 크기만 다를뿐 원은 그저 모두 같은 원일 뿐이다. 원은 도도하고 오만하며 그러면서도 정처없이 강한 이끌림에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래서 원을 구속하기란 쉽지않다. 뉘여진 음료수 캔들 만으로 온전하게 한곳에 쌓아놓기는 힘든 일이다.


세모는 그나마 원에 비해서 안정적이다. 어떻게든 대지에 안착시킬 수 있는 평평한 세개의 변은 균형이 무너져도 어디에든 의지하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유연함을 균형감각의 기본으로 치는것도 이러한 이유다. 3권분립 체제나 종교쪽의 3위일체 등은 모두 조화를 강조하지만 사실상 각 권력의, 요소의 팽팽한 균형을 의미한다. 그래서 세모는 언제나 긴장한다. 가장 길고 의지할 밑바닥이 되지 못하면 나머지 둘은 서로를 버티는 고역을 감수해야 한다. 말이 협력이고 의지지 서있는 것보다 눕는게 편한 것은 당연하다. 이런 내면의 이기심과 긴장은 그래서 하늘로 뾰족하게 솟아있다. 세보는 결코 의자가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네모는 철저한 협력체제다. 원과 삼각형 사이의 공백인 이각형이 존재할 수 없기에 이각형 둘이 모여 네모를 만든다. 동그라미처럼 줏대가 없는것도 아니요 세모처럼 이기적이지도 않다. 아래변과 위변이 두개의 좌우변을 중심으로 버티는 것처럼 이 네모의 형태는 모든 변의 각별한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하지만 필사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듬직하다. 마치 당연히 내가 해야할일 이라는 것 마냥 자신 옆의 두 존재를 묵묵히 잡으며 또 그들과 함께하는 상대편 쪽도 바라봐준다. 세상의 모든것을 담고 또 함께하는 박스처럼 네모는 아무리 함께해도 불안하지 않다. 마치 세상은 이런 균형감각으로 이뤄져 있다는듯 넉넉하게 자신의 등을 내어준다.


보통 사람들은 둥글둥글하게 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은 오히려 네모 같아야 하지 않을까? 다만 아이러니한 것은 네모 이후 각을 늘리면 늘릴수록 그것은 다시 동그란 형태로 변해간다는 것. 그래도 아직까지 그 완벽하기 그지없는 원이 되기 힘들다면 우선 그 사이 네모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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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스터디 멤버였던 도아가 수년만에 만난 자리에서 이 글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간이 지나도 이 글만은 잊혀지지 않는다며. 나는 잊었는데 다른 사람이 기억해주는 글이란 꽤나 묘한 기분이다. 이것 역시 이번에 이사하면서 추억의 뭉텅이 속에서 찾았다.



그나저나 소고기까지 얻어먹어놓고 결혼식 못가서 미안하다 도아야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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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oonjin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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