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nho

빅뱅이론 시즌11 그리고 젠더감성

2018. 7. 15. 15:21

빅뱅이론 시즌11을 몰아봤다. 빅뱅이론은 시즌1부터 여러 메타포를 가지고 있다. 스쳐지나가지만 만만하게볼 수 없는 첨예하고 민감한 이슈들이 득실댄다. 종교, 인종, 젠더, 심지어 민주주의까지 본질적으로 툭 건들고 넘어가는 과감함. 어떻게 이렇게 대놓고(?) 혹은 너무나 아무렇지않게 이런 이슈들을 던지고 또 놀 수 있는거지? 


여기서 발견한게 '여유'라는 키워드다. 이 사회는 아직까지 맛보지 못한 내면적 갈등과 이슈들이 많다. 최근 부각되는 것이 젠더 이슈인듯 하고. 반면에 미국에서는 이미 돌출되고 경험했던 이슈들이 상대적으로 많아 보인다. 미디어에서는, 특히 시트콤이라는 가벼운 일상과 조크를 다루는 컨텐츠는 사회가 경험하지 못했거나 내면적으로 낯선 이슈를 상대하기 어렵다. 웃음은 공감에서 비롯되는데 대중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성공적인 자리매김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미국 안에서는 그 성숙도는 차치하더라도 이런 이슈들이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쳤고, 빠르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이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유럽도 비슷하리라고 본다. 이런 환경에서만 나올 수 있는 여유. 농담으로 치환하면서 웃음과 동시에 그 이슈들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볼 수 있는 넉넉한 시선. 각 이슈마다의 본질과 그것이 현실과 충돌했을 때 발생하는 모순을 수시로 바라보는 과감한 시선들. 그것을 이번 빅뱅이론 시즌11에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그러다 뜬금없이 어떻게 촛불혁명은 축제같을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이 연결됐다. 정치적 시위활동은 보통 투쟁과 무력이라는 키워드와 분리하기 어려운데 말이다. 그야말로 시공간을 초월한 전대미문의 현상이었다. 앞으로도 다시 가능할 것인가 의문이기도하고. 


방구석 상상으로 추론해보건데 그 키워드 역시 '여유'다. 온전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목숨건 투쟁이 필요했던 과거와는 달리 민주정권 10년을 거치면서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를 밑받침하는 너무나 당연한 기반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어진 10년 가까운 시간은 그야말로 인내의 시간. 당연히 가지고있어야할 가치가 사라지는 상황을 사람들은 견딜 수 없었을거다.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것을 박탈당하는, 가진 자의 투쟁이 가장 절실하고 매서운 법이다. 게다가 대충 시간이 지나서 상속받은 재산이 아니라 본인 혹은 가까운 주변 사람들의 희생, 피땀의 노력으로 쟁취한 것이라면 그저 넋 놓고 뺏길 수 없는 노릇이다. 


그와 동시에 '여유'가 있었다. 제대로 내면화하지 못했으나 그저 당위가 좋아서 내달렸던 과거의 막연함이나 동경과는 다른, 이미 민주주의 맛을 본 사람들의 넉넉한 시선이 존재한다. 그래서 절실하면서도 현명한 판단과 행동이 이어졌던거다. 여유롭지 못하고 초조하면 시야가 좁아지고 성급한 결정을 하기 마련. 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상처받지 않은 온전한 상태로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과격하지 않도록 나와 주변을 살폈고, 상대의 자극과 모략에 현명하게 대처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온당한 도구여야했고, 그 사이에는 여러 갈등과 이견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본질을 알았기에, 오히려 스스로를 절제하고 주변과 다수를 다독였다. 이 얼마나 현명하고 세련됐으며, 무엇보다 여유로운가[각주:1]


반면에 최근 젠더 이슈를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직 여유가 없어 보인다. 모두가 미숙하고 협소하며 자기모순적 요소들로 가득 차있다. 이는 혜화동 시위를 위시한 래디컬 페미니즘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각주:2]. 함께 논의할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 즉 우리 모두는 아마도 외부와 싸우기보다는 자기 자신들과 싸우고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386이 비민주적 성향을 가지고 있거나, 보수와 안보를 이야기는 주체가 가장 대외의존적 성향을 보이는 모순을 우리는 많이 봐왔다. 그리고 그 모순이 궁극적으로는 당위를 치명적으로 상처입혔고, 현실화, 내면화하기 쉽지 않게 했던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협소한 시야와 성급함 속에서 현실 속 모순은 주변부로 밀려나기 일쑤다. 당위와 현실을 유연하게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꽤나 복잡하고 힘들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이를 너무 간과하고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이슈는 사회제도 뿐 아니라 구성원들의 의식과 생활양식, 여기에 생물학적 특성 등 다양한 요소들의 충돌과 모순으로 발생한다. 당연히 단번에 해결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심지어 인류가 존속하는한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위에는 동의하나 현실 모순을 어떻게 타파할지 나도 잘 모르겠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접점을 어떻게 잡아야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어디서 시작할지 막막함이 있는것도 사실이다[각주:3]. 여유가 필요한 시점인거 같다. 



폭염이지만 에어컨 아래에서 간만에 여유있는 주말을 보내다가 쓴 뻘글.



  1. 여기에 더해서 우리나라의 높아진 교육수준 역시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 [본문으로]
  2. 그쪽이 제일 심각해 보이기는 하지만. [본문으로]
  3. 뭐 구석에 처박혀있는 이 블로그에와서 설마 페미니즘 공부를 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려나;; 쓸데없이 미리 방어하자면 왠만한 분들보다는 잘 알만큼 공부한 사람입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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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oonjin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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