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nho

용문해장국

2016. 7. 29. 08:33

어제 늦게까지 고단백 음식과 당연히 술로 달린 덕분에 푹 늦잠을 자려 했다. 하지만 더부룩한 속은 결국 나를 이른 아침에 일으켜 세웠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고 혹시 열어놓은 창문은 없는지 어슬렁거린다. 투둑투둑 소리와 함께 시계를 보니 7시 정도가 되었다. 마침 잘됐다 싶어 주섬주섬 챙겨서 문을 나선다. 목표는 당연히 용문해장국.



누군가는 한성옥을 말하고 누군가는 창성옥을 추천하지만 나에겐 단연 용문해장국이다. 심지어 한성옥은 집에서 걸어서 3분 거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용문해장국을 방문하는 이유가 있다. 소위 말하는 용산 해장국 명가들 중 가장 순하고 부드러운 맛. 거칠고 강렬한 한성옥이나 한성옥 보다 약간 수위를 낮춘 창성옥에 비해 용문해장국은 담백함과 시원함이 단연 돋보인다. 아마도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콩나물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고기향을 정리하기 위한 향신료도 이곳에선 최소한으로 사용된다. 고기를 삶을 때 미리 향을 제대로 잡고 그 이후 해장국과 합류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해장국 자체에 향신료나 양념을 과도하게 풀어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국물이 걸죽하지 않고 깔끔하게 떨어진다.


술 마시고난 다음 날 강렬하게 땡기는건 그래서 역시 용문해장국. 내가 생각하는 해장국 최고 미덕은 전날 아무리 달렸어도 소주 한잔이 더 땡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정도로 속을 제대로 풀어주는 녀석이라면, 그리고 어쩌다 한번이 아니라 매번 그런 충동을 느끼게 한다면 그것이 최고의 해장국이 아닐까. 두툼한 살이 붙어있는 뼈를 건져서 살살 발라먹고 밥을 휘휘 말아 후르륵 먹는 이 정통적 절차가 이곳에선 전혀 번거롭지 않다. 이 맛을 주변 지인들에게 전달해주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 이른 새벽 2~3시쯤 시작해서 오전, 혹은 운좋으면 점심시간까지만 장사한다. 이와중에 점심시간에 찾아가도 허탕을 치기 일쑤다. 당일 재료가 떨어지면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과감하게 문을 닫는다. 


그래서 대부분 다음날 이른 아침이나 새벽에 방문하게 되는데 오랜시간 이곳과 함께한 단골들을 여럿 볼 수 있다. 장인어른을 모시고 오는 사위, 새벽 마지막 차수를 달리는 아저씨 무리들, 외국인에게 해장국 먹는 방법을 알려주는 한국인 등... 여러 단골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아주머니들을 보면 훈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근 2년 가까이 꾸준히 방문해왔는데 결국 이렇게 기록을 남기게 된다. 문득 내리는 비에 센치해진 상태에서 이 맛을 봐버렸기 때문 일지도.




※ 원래 맛집이나 음식에 대한 포스트는 남겨본 역사가 없는데 슬슬 남겨볼까 한다. 원래 입맛이 까다롭다거나 가려먹는 스타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름 전주의 아들이라고 맛이 있고 없고는 대충 구분할 줄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제대로된 음식에 대한 존경(?)과 감사가 생겨나고 있다. 이상한 음식은 몸에서 반응이 바로 오기도 한다.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몰라 약간 서글프지만 그만큼 더 예민하고 정교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것도 사실이다. 이와 더불어 삶의 즐거움 중 하나를 기억으로 남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너그러움(?) 같은 것도 생긴거 같다. 꾸준할지는 모르겠으나 괜찮은 곳이라면 마땅히 기록하고 추천해나갈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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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yoonjin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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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소회들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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